본문 바로가기

살기/주저리주저리

교수와의 상담에 대한 기억

728x90
반응형

고등학교 때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었다. 의대, 약대 쪽은 당연히 점수가 안됐고, 당시 사범대 점수도 최상위권이라 어려웠다. 자연대, 공대 정도가 남는데 자연대를 지원할 정도의 열정은 없었고, 공대를 쓰기로 했다. 공대가 뭔지도 잘 모르지만, 남고에 다녔던 나는 '남자는 공대지'라는 정체 모를 슬로건을 들으며 공대를 쓰기로 한다.

어떤 과가 좋은지는 생각도 별로 안해봤고, 가나다군 모두 다른 과를 썼다. 아무튼 그렇게 들어간 컴퓨터공학과. 고등학교 때 별로 하고 싶은게 없었다는 막연한 자신감 결여, 이미 프로그래밍을 좀 할 줄 아는 친구들을 보면서 느끼는 패배감. 전공 수업은 따라가기 어려웠고, 대충 공부하는 척 하며 그저 마시고 노는데 대학생활을 보낸다.

놀다보니 어느 새 2학년. 군대를 빨리간 친구들은 1학년 마치고 가고, 2학년 마치고 가려는 애들도 꽤 있었다. 공부도 안하면서 2학년 마치고 가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새로 들어온 새내기도 있고 정말 더 열심히 놀았다.

2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이제 곧 입대해야하는 상황. 많은 애들이 그랬듯 '군대 갔다와서 공부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그러려고 보니 내가 다녀오면 정말 열심히 할까? 취업은 될까?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러다가 교수와 상담을 해야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 교수님이랑 얘기를 해보자, '나의 이 고민들, 불안감을 상담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교 출신인 이 교수님, 정말 별로였다. 먼저 호구조사를 하셨다. 나이, 사는 곳, 정시/수시 여부, 성적. 이걸로 일단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았다. 현재 고민들에 대해서 아무 답변을 해주지 않았고, 빨리 군대가라는 이야기를 몇번이고 반복하셨다. 얼굴이 벌개진채로 교수방을 나와서 담배를 쭉쭉 태웠다. 내가 그렇게 쓰레기인가? 상담할 가치가 없나?

뭔가 모를 분노와 공부에 대한 열의가 생겼다. 복학생 형들을 만나 여러가지 상담을 받았다. 나는 대학원을 가기로 마음 먹게 되었다. 나의 결론은 이랬다. '일단 열심히 해봐야 뭘 알지'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상담하게 되었고, 학생들을 만나면 그 때 일이 자주 떠오른다. 학교에 와보니 다른 많은 교수님 또한 상담이란 걸 귀찮아하신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상황은 이해가 간다. 20-30년 교수생활 하신 교수님들이니 학생들을 딱 보면 상황 파악이 되시겠지. 나도 가끔 답답한 학생들 만나면 뭘 어떻게 도움을 줘야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나는 건수 채우기 위한 상담보다는 이런 저런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학원생들에게도 학부시절 고민했던 것들에 대해 묻기도 한다. 수업 때 상담받고 싶으면 언제든 오라고 언급도 하지만, 사실 잘 오진 않는다. 그럴만한게 없을 수도 있지만, 교수랑 독대하는게 편하지 않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몇년 더 경험을 쌓으면 학생들에게 도움줄만한 상황들이 올까? 중간고사 채점 후 점수들을 보고 걱정이 많아진다 허허.

728x90
반응형

'살기 > 주저리주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영 한 달 배우고 느낀 점  (1) 2023.09.04
신라면 더레드 후기  (2) 2023.08.18
태계일주2 막방까지 보고  (2) 2023.08.14
이마트 8각모둠회  (0) 2023.06.12
재임용 심사  (1) 2023.04.10